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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두리

아..제가 원래는 요리를 했었는데요..

“나중에 뭘로 밥 먹고 살려나”

 

누구나 그렇듯 인생 가장 큰 고민이고
어렸을 때부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다는 어떻게 평가받는지만 신경 써왔다
그도 그럴게 ‘저는 어떤 사람입니다’ 보다는 ‘저는 뭘 하는 사람입니다’ 가 나를 설명하기 더 쉬웠으니까

 

나와 비슷한 또래라면 다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겠나
20대의 밤을 열개 남짓 보유하고 있는 지금도 크게 달라진건 없는거 같다.
써왔던 이력서들조차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거나 하진 않았으니까

 

10대의 끝자락엔 으레 그렇듯 내게도 선택의 시간이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내가 공부를 싫어하는 줄 알았고
대학은 공부를 하러 가는 곳이지 취업을 위해 가는 곳이 아니다라는 고지식한 마인드로
수능 평균 2등급 후반대를 받아놓고 서울의 한 직업전문학교 자동차과를 들어갔다
난 뭘 손으로 만지고 어떤 현상의 인과를 파악하는걸 즐겼으니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이 때부터 나는 꽤 열심히 살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어제 오늘 내일만 열심히 살았다
한 학기만 남겨놓고 휴학을 했고 군대에 가기 전주까지 풀타임 알바를 했다
긴머리의 내가 그랬듯 빡빡이인 나도 손에 상처와 엔진오일자국이 따라다녔으니 감도 잃지 않았다
전역 후 2주 뒤에 다시 복학했고 졸업 전에 관련 업종에 취업까지 성공했다

 

“이걸로 먹고 살면 되려나..”

 

먹먹한 마음이 커졌다 줄었다 할 때쯤 이러저러한 일로 회사를 관두게 되었다
다시 관련업계에 취업준비를 해도 됐었지만..
그 먹먹한 마음이 신경쓰여 결심이 서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뜬금없게도 치킨집을 운영할 기회가 생겨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으나 부모님의 반대로 하지 못했던 요식업을 해보기로 다짐했다
치킨집 1년..하루에 13시간씩 쉬는 날 없이 굴러다닌 내 몸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기에
(다시 이 글을 읽는 미래의 난 상기해라 이 때 정말 죽을뻔 했다 지금 니가 처한 그 상황도 이겨낼 수 있다)

결국 가게를 넘기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28살의 나는 8년의 사회생활 중
학교를 다니면서 했던 알바를 포함 5년이 넘어가는 시간동안 식음료를 만들면서 살아왔다

 

자동차를 공부하고 관련 업계에서 일하는 동안 난 수동적인 놈이었다
알려주는 것만 배웠고 내가 뭔가 따로 찾아보고 궁금해하지 않았다
아마 짧은 회사 생할이 힘들었던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겠지

 

의외로 난 요리를 좋아했고 휴식 시간, 식사 시간, 출퇴근 시간, 자기 전, 화장실
내 손에 스마트폰이 있는 순간엔 요리와 관련 된 지식이나 상식을 찾고 있었다
심지어 내가 군대에서 제일 많이 본 방송도 요리프로그램이다 ㅋㅋㅋ (올리브 만세)
난 이걸 공부라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난 정말 열심히 공부했던 것이었다
책상에 앉아서 책을 펴놓고 하는 것만이 아닌 내가 인터넷으로 검색한 레시피를 만들어보고
칼질 웍질 연습을 하고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어보는 그 모든 과정이 사실 학습이고 연습이었다


요리만으로는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메뉴 개발이나 밀키트 제작이나 창업컨설팅 등
여러가지로 알아보고 공부하던 와중에 그게 와버렸다

“코로나”

요식업계는 말 그대로 지옥도였고 내가 알던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잃을 때쯤
나도 잠깐 요리를 쉬면서 다른 일을 하자고 생각했을때다


처음 코딩, 개발을 접한건 바로 이 때, 28살을 시작된 날로부터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이 때는 사실 공장일을 배우기 위해 폴리텍에 다니려고 기다리던 중이었고
조금이라도 뭘 안 하고 있으면 인생을 낭비하며 사는 기분이 드는 난
맛만 보자는 기분으로 생활코딩 유튜브를 듣기 시작했다

 

같은 기분이었다. 요리를 처음 했을 때랑

 

개발이나 요리는 공통점이 참 많다
전혀 다른 재료들을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 진짜 다른 결과물이 나오고
같은 재료들로 같은 것을 만들어도 사람마다 그 방식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본인이 만들어보지 않으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
개인의 실력만큼 협업과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중요하고
접근은 쉽지만 전문가가 되긴 힘들고 고되다
내가 상상하는 것을 내가 직접 구체적으로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
문제해결이 된게 중요한게 아니라 어떻게 해결했고 왜 이런 문제가 일어났고를 파악하는게 중요하
그리고 무엇보다 멋있다😏

 

요리를 할 때도 어떻게? 왜? 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던 내가 매력을 안 느낄래야 안 느낄 수가 없다
대충 공장일이 나한테 맞지 않음을 느꼈을 때
그게 아마 코딩을 처음 만난지 1년 쯤 됐을 때에
그냥 다 때려치고 온갖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을거다

 

JS, 파이썬, 코틀린 등등 여러 스택 찍먹한다고 토이프로젝트 각각 몇개씩 해보니
계절이 2번은 바뀌었고 이제 뭔가 벽이 느껴지고

조금 있으면 서른에 갚아야 하는 대출에 나빠진 건강에
그냥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나름 고심해서 부트캠프 등록했고

 

내가 만들었던 조잡한 토이프젝들 공부한 자료들 VSC에 설치한 플러그인까지
아니 그냥 개발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싹 다 날렸다
진짜 초심을 찾으려면 처음부터 시작하자는 생각으로
근데 좀 후회 중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까 내가 처음 봤던 생활코딩 영상들을 쭉 다시 봤다
HTML부터 시작하는데 이거 또 봐도 재밌다
사람이 어떻게 말을 이렇게 흡입력 있게 할까?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 내 유튜브 추천 영상은 요리가 반 개발이 반이다
근데 아직 이 정도의 영상은 없는거 같다 ㅋㅋㅋㅋ

 

부트캠프 0주차 미션 중에 어떤 개발자가 될지 생각해보라는 미션이 있었다
올해 초에 생각해놨었는데 이걸 어떻게 구체화 할지 고민이 참 많았는데..
이제 말할 결심만 좀 선거 같다

 

코드를 요리하는 개발자가 되자

 

레시피를 기록하듯이 코드를 기록하고
이 코드에선 왜 이런 맛이 날까를 고민하고
이 코드는 어떻게 이런 맛을 냈는지 고민하자
5분 걸려 나온 맛 없는 생각보다는 30분 걸려 나온 정말 맛있는 생각을 내놓자
추상적인 상상을 눈에 보이는 기능으로 내놓아보자
지금 이 코드의 맛을 더 효율적이고 더 쉽고 간단하게 내보자
내 가족이 쓴다는 생각으로 코딩하자
더 맛있는 코드를 짜보자

 

힘들고 지칠 때마다 여기 들어와서 이 글을 보는 내가
이 글 전부를 술술 외울 때쯤엔
어디 가서 당당히 ‘저 개발자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